아돌프 히틀러는 왜 유대인을 죽였을까?
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, 즉 홀로코스트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정치적, 사회적, 경제적, 그리고 이념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.
주요원인 - 6가지
1. 반유대주의의 역사적 뿌리
- 유럽에서는 중세부터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지속되었습니다. 유대인은 종교적 이유, 경제적 경쟁,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편견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.
- 특히, 유대인들은 금융업에 종사한 경우가 많았고, 이는 경제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희생양이 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.
2. 제1차 세계대전과 독일의 패배
-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,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경제적, 정치적 위기를 겪었습니다.
-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을 독일 패배의 ‘희생양’으로 삼아 대중의 분노와 불만을 유도했습니다.
3. 나치 이데올로기와 인종주의
- 히틀러는 그의 저서 *“Mein Kampf”*에서 유대인을 ‘열등한 인종’이자 독일 사회를 타락시키는 존재로 묘사했습니다.
- 나치는 독일인을 ‘게르만 민족’, 즉 ‘우월한 인종’으로 규정하며 유대인을 포함한 비(非)아리아 인종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.
4. 경제적 문제와 선전
- 1930년대 대공황으로 독일은 극심한 경제적 혼란에 빠졌습니다. 나치는 유대인을 경제적 문제의 원인으로 비난하며 이를 선전 도구로 삼았습니다.
- 나치의 선전 기계는 유대인을 ‘적’으로 묘사하여 독일 대중의 지지를 얻었습니다.
5. 전체주의 체제와 폭력적 통치
- 나치는 독재 체제를 통해 모든 정치적, 사회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,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.
-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을 통해 유대인을 법적으로 차별했으며, 이후 1941년부터는 유대인의 대량 학살(홀로코스트)을 실행했습니다.
6. 제2차 세계대전과 ‘최종 해결책’
-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점령지에서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수용소에 보내거나 학살했습니다.
- 1942년 반제 회의(Wannsee Conference)에서 ’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(Endlösung)’이라는 명목으로 대량 학살 계획을 구체화했습니다.
결론 - 뿌리깊은 반유대주의 + 전체주의
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유럽에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, 경제적 혼란, 나치의 이데올로기, 그리고 전체주의 체제의 결합으로 발생한 비극적인 역사입니다. 이는 인종주의와 혐오가 얼마나 큰 참사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.
현재 2025년의 대한민국도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
- 뿌리깊은 반 공산주의 사상을 이용해 진보를 공산세력으로 규정해서 인기몰이 후 당선
- 집권후 지도자의 실정을 가리기위해 적들을 “공산세력”으로 규정해 싸그리 소탕하기로 결정
(수거, 사살…등 무시무시한 계획)
-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계엄으로 전체주의적 통치시도
- 초스피드 민주적 절차로 계엄이 무산
- 궁지에 몰린 지도자는 반격을 노리며 지지자들에게 사실상 전체주의의 필요성 주장 중
이런 큰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으며
오래된 역사를 스스로 찾아 공부해보게 된다
과거 역사가 오늘과 무섭게도 닮아있기 때문이다
*혹시나 내글을 읽고 욕하며 공산주의 옹호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바로 홀로코스트 같은 짓을 한다는걸 직시 하기 바란다
(본인은 그 북파공작 HID 장을 지낸 분의 자손으로 매우 보수적인 집에서 자란 사람 공산주의자 북한김정은 다 혐오함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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